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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 봇, 온라인 포커 사이트를 점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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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개발로 극도로 발달한 포커 봇(BOT)의 등장

온라인 포커 사이트로 침투해 승리를 거듭하며 수많은 회원의 게임 머니 약탈

온라인 포커를 지배하는 포커 봇의 정체는 러시아 출신 개발자 집단

사용자 이탈을 우려한 온라인 포커 사이트, 봇 색출 노력

개발자 집단, 포커 봇 솔루션을 일반에 공개해 수익을 올리는 방향으로 전환

일상 속에 스며든 포커 봇, 진화의 끝은 ‘약탈’이 아닌 ‘공생’


텍사스 홀덤은 포커 게임 중 가장 큰 인기를 누리는 게임입니다. 홀덤이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하자 온라인으로 포커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온라인 포커 사이트가 등장하였고, 많은 온라인카지노 플랫폼 역시 포커 게임을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온라인 포커 사이트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무명 플레이어들이 프로 포커 플레이어를 압도하며 돈을 쓸어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른바 인공지능 컴퓨터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포커 봇’의 등장입니다.


러시아 출신 대학생들로 이루어진 집단이 개발한 포커 봇은 사용자들을 무자비하게 약탈하기 시작했고, 위기감을 느낀 온라인 포커 사이트 운영진은 봇을 색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이트 운영진과 대결을 거듭하며 발전과 확장을 거듭해 온 포커 봇 개발자들은 이윽고 인공지능 개발 회사를 설립하기에 이르렀고, 포커 봇은 또다른 진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온라인 포커 세계를 무너뜨릴 심각한 위협이라는 평가를 받은 포커 봇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온라인 포커 사이트에 몰래 침투한 포커 봇

페루엘(Feruell)은 러시아 프로 포커 플레이어 출신으로, 지지포커(GGPoker)나 아메리카 카드룸(Americas Cardroom) 등의 온라인 포커 사이트에서 익명으로 게임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2013년 ‘퍼포머(Performer)’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비아체슬라프 카르포프(Vyacheslav Karpov)라는 사람이 그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한 채팅방에서 사람들과 떠들며 허풍을 떨던 카르포프는 본인의 포커 실력을 떠벌리고 다녔고, 어느 날 돌연 페루엘에게 텍사스 홀덤 대결을 신청했습니다. 포커 실력이 변변치 않은 카르포프가 홀덤 포커 프로 선수 출신인 페루엘의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은 자명했습니다. 둘은 세계적인 온라인 포커 사이트인 ‘포커스타즈(PokerStars)’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의 게임 플레이는 이 세상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페루엘(Feruell), 러시아 출신 프로 포커 플레이어

하지만 게임이 시작되자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갔습니다. 카르포프가 연신 팟(Pot)1을 가져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400번의 게임 후 경기는 끝났고, 프로 선수 출신이자 리밋 게임2의 제왕이라 불리던 페루엘은 20,000달러(약 2,760만 원)를 잃고 말았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을 맞닥뜨린 페루엘은 곧 의심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카르포프가 특정 소프트웨어를 사용했을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포커 플레이 프로그램, 일명 포커 봇(BOT)은 과거 수십년간 존재해 왔지만, 최고 수준의 프로 플레이어를 이길 만큼의 수준에 다다르지 못 한다는 것이 중론이었습니다. 2003년 세계 최고의 포커 대회인 ‘월드시리즈 오브 포커(World Series of Poker, WSOP)’에서 홀연히 나타난 미국의 회계사 출신 ‘머니메이커(Moneymaker)’가 우승한 이후, 전세계에는 그의 성공을 답습하기 위한 온라인 포커 붐이 일었습니다. 각종 온라인 포커 사이트가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고, 많은 온라인카지노 플랫폼이 포커 게임을 도입하고 전면에 배치하여 사람들을 끌어들였습니다.


이 시절 온라인 포커 사이트 이용자들은 자신과 승부를 겨루는 상대방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상황이 묘하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2019년 미국 카네기 멜런 대학(Carnegie Mellon University)의 연구진이 개발한 인공지능 기반 포커 봇이 토너먼트 이벤트에서 5명의 프로 포커 플레이어를 모두 무릎 꿇린 것입니다. 그러자 일부 인공지능(AI) 개발자들이 가상 포커(Virtual Poker)를 이용해 인공지능을 학습시킨 후, 이렇게 탄생한 인공지능 포커 봇을 온라인 포커 사이트에 몰래 침투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부 파렴치한 사이트 운영자들은 포커 봇을 이용하는 행태까지 보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포커 봇과 대결하여 게임에 패배하여, 베팅에서 잃은 금액을 본인들의 수익으로 취한 것입니다.


그것은 실로 재앙(scourge)입니다.

한 온라인 포커 사이트 운영 담당 임원

포커 봇의 존재가 알려지자 온라인 포커를 즐기는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 사람들이 봇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즐기는 포커 게임은 인간의 두뇌와 두뇌가 만나 승부를 겨루는 지성의 싸움이며, 어느 포커 봇의 성능이 더 뛰어난지 겨루는 장이 아닙니다. 사람과 대결한다 믿었던 믿음은 산산히 부서졌고, 공정한 실력으로 승부를 겨룬다는 믿음마저 박살났습니다.


세계적인 투자은행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의 애널리스트들은 약 30억 달러 규모(약 4조 원)의 온라인 포커 시장에서 포커 봇이 시장의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위협으로 떠오를 것이라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러한 위협이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포커 봇 소프트웨어는 이제 단돈 수백 달러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온라인 포커 사이트는 봇을 방지하고 차단하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포커 봇이 얼마나 많이 퍼져 있는지, 그리고 어디서 만들어지고 있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프로 포커 선수나 포커 사이트 운영진은 새로운 고객의 유입이 끊길까 두려워 포커 봇의 존재를 쉬쉬하기도 했습니다.


포커 봇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시작했을까?

영국의 저널리스트 킷 첼렐(Kit Chellel)은 지난 달 20일 블룸버그(Bloomberg)에 기고한 기사를 통해, 포커 봇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그에 따르면 포커 봇의 정체는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에 기반을 둔 한 연구 조직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첼렐의 집요한 추적에 의해 정체가 드러난 ‘봇 농장 회사(BOT Farm Corporation)’, 이른바 ‘BF 주식회사’라는 별명의 이 조직은 그가 처음 상상한 것보다 포커 산업에 더 깊숙이 침투해 있었습니다.


포커 게임에서 승리하려면 운과 실력이 모두 필요합니다. 물론 도박의 영역인 만큼 운이 따라주기만 한다면 실력과 무관하게 승리할 수도 있습니다. 일반인이 프로 스포츠 선수를 상대로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포커는 다릅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포커 플레이어를 상대한다 해도 운이 따라줄 경우 좋은 패를 손에 쥐어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포커는 운보다 확률 계산에 의한 실력으로 결과가 좌우되는 경향이 강합니다. 한두 번의 게임에서 운으로 승리할 수 있지만, 게임이 반복되고 게임 횟수가 쌓일 수록 운보다 실력에 의해 승부가 판가름나게 됩니다. 운이 게임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인 바카라 혹은 룰렛 등의 카지노 게임에 비해 운의 영향이 적기 때문에, 홀덤은 단순한 도박이 아닌 실력의 범주로 여겨집니다.


포커 봇이 노리는 지점은 바로 이 곳입니다. 단기적으로는 운에 의해 승부가 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실력이 운보다 중요하며 수학적 확률 계산을 통해 승률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컴퓨터는 홀덤 핸드 확률, 플레이어 참여 인원 수, 테이블 위치 등의 수많은 변수를 인간이 수행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계산하여 승리 확률이 가장 높은 최선의 선택지를 고릅니다. 이러한 포커 봇을 개발하기 위해 시베리아 서부 옴스크(Omsk) 출신의 학생들이 힘을 합쳤습니다. 수학과 물리학, 경제학을 전공한 컴퓨터 개발자들이 온라인 포커 붐에서 착안하여 돈을 벌기 위해 포커 봇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이들의 시작이 처음부터 수월했던 것은 아닙니다. 50여 명으로 구성된 이들 집단은 말린 파스타 조각을 칩으로 삼아 매일 같이 포커 게임 훈련을 거듭했습니다. 승자는 식사를 하고, 패자는 굶는 가혹한 방식이었습니다. 낮에는 대학에서 확률 이론과 게임 이론에 대하여 공부하고, 매일 저녁 기숙사에 모여 밤새 포커 게임을 연습했습니다. 이들이 연습에 사용한 포커 사이트는 현재의 온라인 포커 사이트와 거의 흡사합니다. 닉네임으로 표시되는 계정을 등록하여 자금을 충전하고, 컴퓨터가 섞는 카드를 받아 게임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혹독한 훈련을 거친 학생들은 미국 등 전세계인들이 참여하는 온라인 포커 사이트에 침투하여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무자비하게 돈을 갈취하기 시작했으며, 시베리아의 다른 대학들도 이들의 작전에 동참하고 세력을 키워 나갔습니다. 규모가 커질 수록 이들의 수익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급기야 러시아의 부동산 거물이자 투자자인 스뱌토슬라프 카푸스틴(Svyatoslav Kapustin)과 같은 외부 투자자를 유치하기까지 했습니다. 포커 게임에 참여하려면 막대한 판돈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2006년 개최된 포커 대회 ‘파티 포커 상트페테르부르크 오픈(PartyPoker St. Petersburg Poker Open)’에서 우승하고, 집단의 핵심 멤버이자 프로 포커 선수들을 육성한 블라센코(Vlasenko)를 영입했습니다. 블라센코는 각 핸드 승률을 평가하는 수학적 접근 방식을 개발했으며, 집단의 핵심 멤버가 이를 수학적 모델로 프로그램화 하여 포커 봇 제작에 나섰습니다.


포커 봇의 개발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포커 게임 중 절대적인 인기를 자랑하며 온라인 포커 사이트의 중심인 ‘텍사스 홀덤(Texas Hold’em)’은 최대 10명의 플레이어가 참가할 수 있으며, 각 플레이어는 핸드를 포기하거나, 판돈을 올리건(레이즈), 올인까지 여러 가지 결정을 하게 됩니다. 판돈과 레이즈 금액의 제한이 없는 노 리밋(No Limit) 텍사스 홀덤 게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나리오의 가짓수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게다가 홀덤은 상대가 가진 핸드를 예측해야 하고, 상대의 행동에서 단서를 얻어 거짓으로 자신의 핸드를 위장하는 블러핑(Bluffing)까지 추리해야 합니다.


거짓을 판별하는 데에 사용된 것은 바로 이들 학생들이 대학에서 전공한 ‘게임 이론’입니다.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컴퓨터의 가장 큰 약점인 거짓말을 극복하기 위해 학생들은 게임 이론을 적용하였고, 이를 통해 컴퓨터는 승리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어느 타이밍에 블러핑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계산하는 것은 물론 상대의 거짓도 판별해낼 수 있었습니다. 게임 이론이 포커에서 승리하기 위한 수학적 모델을 완벽에 가깝게 만들어준 것입니다.


온라인 포커 사이트를 점령하기 시작한 포커 봇

포커 봇이 활개를 치기 이전 초기, 시베리아의 학생 집단은 포커 봇을 온라인 포커 사이트에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포커 봇을 만든 이들은 일정 금액을 받고 포커 사이트 플랫폼에 봇을 연결하였으며, 포커 사이트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3TB 상당의 게임 데이터를 기반으로 더욱 많은 학습을 수행하여 승리 확률이 높은 시나리오를 더욱 잘 골라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온라인 포커 사이트는 최초 포커 봇의 등장을 그리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포커 봇의 성능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러시아 출신 학생들이 만든 포커 봇의 무서움을 차츰 실감하게 되자, 결국 2015년 봇을 감지하고 배제하기 위한 조치에 착수했습니다. 과거에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포커를 즐기는 것이 범법 행위는 아니었으나, 라스베이거스가 위치한 네바다주에서는 기계를 이용한 도박이 불법인 데 착안하여 약관을 개정하고 봇을 금지했습니다. 그리고 봇을 사용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계정을 폐쇄하고 자금을 압류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봇을 감지하느냐’입니다. 게임 이론에 최적화된 포커 봇은 셀 수 없이 많은 선택지 중 최상의 선택을 하기 때문에 단순히 승률이나 플레이 스타일만으로 걸러낼 수 없습니다. 사이트 운영진이 최초 고안한 방법은 온라인 채팅을 모니터링하는 것입니다. 채팅에서 떠드는 말을 살펴보고 사람인지 아닌지 추적하고, 이들이 마우스를 조작하는 방식을 조사하여 실제 사람이 조작하는 것과 비슷한지 감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때부터 러시아 포커 봇 집단과 온라인 포커 사이트 운영진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이트 운영진의 봇 탐지 전략을 피하기 위해 러시아의 이 학생들은 프로그래머를 고용하여 소프트웨어를 조정했습니다. 이내 포커 봇은 책상에 앉아 마우스를 자연스럽게 흔드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시뮬레이션하여 그럴 듯한 움직임을 보이게 되었고, 채팅방에서 실제 사람이 채팅하는 듯한 채팅을 하게 되었으며, 게임에서 결정을 내리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무작위로 지정하여 자연스럽게 주저하는 모습마저 연출했습니다. 심지어 가끔은 일부러 패배하여 손실을 보기까지 합니다.


사이트 운영진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게임 무결성’, 즉 공정한 게임 결과를 위해 게임 패턴과 결과를 분석하는 전문가들을 고용하여 플레이어의 선택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백 개의 핸드에서 항상 정확하고 동일한 선택을 하는 사람은 없을 만큼 각자의 플레이 스타일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같은 비율로 게임을 포기하거나 체크 혹은 레이즈하는 행위를 감지하고 봇으로 규정하였습니다. 온라인 포커 사이트를 이용하는 일반 플레이어들 역시 이에 동참하여 본인의 게임 데이터를 검토하고 의심스러운 활동을 신고하며 제재에 힘을 보탰습니다.


이로 인해 러시아 포커 봇 집단은 심각한 존재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포커 사이트에 가입하여 게임을 시작하면 며칠만에 수십 개의 계정을 폐쇄당하고 자금을 몰수당했습니다. 이들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본인들의 포커 봇 솔루션을 운영하기 위한 파트너를 비밀리에 모집했습니다. 파트너는 이들 집단에게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고 포커 봇을 구매한 다음, 사무실을 차려 직원을 고용하고 수백 명의 실제 사람 신분증을 마련하여 의심을 피하기 위한 계정을 생성했습니다.


러시아 집단은 이들에게 오마하 홀덤(Omaha Hold’em), 파이브 카드 스터드(Five Card Stud) 등 다양한 종류의 포커 게임에 최적화된 봇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제공했습니다. 파트너들은 그저 포커 봇을 자동으로 실행시킬 뿐만 아니라, 실제 인간들이 중간에 직접 게임에 참여하여 사이트 운영진의 봇 감지 시스템을 교란시켰습니다. 실제 사람이 적극 참여하여 직접 봇을 운영하기 때문에, 사이트 측에서 실제 사람이 참여하고 있는지 감시하기 위한 플레이 영상 녹화본을 요청할 때에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사이트 운영진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한 포커 봇의 진화

러시아 포커 봇 집단이 ‘BF 주식회사’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도 바로 이 즈음입니다. BF 주식회사와 협력하는 파트너는 점차 늘어났으며, 캐나다와 중국, 인도 및 폴란드 등의 세계 각지에 흩어진 약 600여 명의 사용자들이 앞다퉈 포커 봇을 운영했습니다. 포커 봇을 지나치게 많이 운영한 나머지 한 파트너는 같은 테이블에서 본인의 봇끼리 서로 대결하게 되는 일조차 발생했다고 합니다. BF 주식회사는 결국 파트너와 협력하는 방식이 너무 번거롭고 효율적이지 못 하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고, 이내 포커 봇을 외부에 공개하고 일반 사용자들에게 판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포커 봇 솔루션을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 만나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직접 게임에 참여하여 상대의 돈을 빼앗는 일 없이 봇을 판매하여 수익을 취하게 되자, BF 주식회사는 인공지능 봇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BF 주식회사의 새로운 황금기가 도래했습니다. 기존의 파트너들은 유통업체로 변신하여 BF 주식회사의 봇을 널리 퍼뜨렸으며, 각종 광고를 통해 이름을 알리고 막대한 수익을 거머쥐었습니다. BF 주식회사의 대표작 중 하나가 바로 그 유명한 ‘NZT 포커(NZT Poker)3‘ 앱입니다. BF 주식회사가 전성기를 누릴 때 기록한 수익만 연간 1,000만 달러(138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일각에선 온라인 포커 사이트가 사실 봇을 감지하고 차단하는 데 그리 적극적이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사이트에서 포커를 즐기는 모든 플레이어는 게임 결과에 따라 돈을 따거나 잃지만, 포커 사이트는 돈을 잃는 일 없이 게임이 벌어지기만 해도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플레이어들이 모인 테이블에서 팟의 일부를 수수료로 가져가는 포커 사이트는, 봇인지 여부를 감별할 필요 없이 게임이 성사되기만 하면 모든 계정이 바로 수익원이나 다름 없습니다. 약관으로 봇을 금지하긴 하지만, 누가 이기거나 어떻게 이기는지 여부는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봇은 사람과 달리 지치지 않고 24시간 게임을 수행하기 때문에 사이트가 수익을 올리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포커 게임 특성상 사람들은 다른 플레이어를 기다리지 않고 이미 진행 중인 테이블에 참가하여 즉시 게임을 즐기려 하기 때문에, 24시간 항상 테이블에 참여해 있는 봇은 사람들을 교묘하게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미끼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세계적인 포커 대회인 ‘월드 포커 투어(World Poker Tour, WPT)’를 운영하는 알렉스 스캇(Alex Scott)은 “항상 활성화되어 있는 테이블, 즉 유동성(Liquidity)는 온라인 포커 사이트를 운영하는 데 핵심 요소이며, 포커 봇이 유동성을 담당하고 있다”고 폭로했습니다. 이어 본인이 몸 담았던 회사들은 회사 차원에서 봇을 운영하지 않았지만, 일부 작은 업체들은 유동성을 유지하기 위해 봇을 사용했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습니다.


포커 봇의 시초 BF Corp.가 상상하는 미래

BF 주식회사는 2020년 ‘딥플레이(Deeplay)’라는 회사를 창립하며 새로운 도약을 선언했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더이상 온라인 포커라는 좁은 세계 안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딥플레이는 다양한 기업의 요구 사항을 충족하는 인공지능 기반 데이터 솔루션을 제공합니다. 공식적인 회사 설립과 함께 포커 세계에서 악명을 떨친 과거는 완전히 지우려는 듯합니다. 실제로 킷 첼렐의 인터뷰 요청에 응한 딥플레이 전직 직원 6명 중 딥플레이의 시베리아 시절 화려한 악명에 대해 아는 이는 1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딥플레이의 주요 고객 중 대부분이 포커 클럽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진 못 한 것 같습니다. 이들 포커 클럽은 각 게임의 판돈에서 일정 비율을 걷거나 게임 토큰을 판매하지 않고, 회원에게 사이트 가입시 이용료를 지불하게 하여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중국과 미국 등 베팅에 제한적인 법률을 적용하고 있는 국가의 법령을 피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포커 클럽은 딥플레이의 솔루션을 이용하여 손쉽게 온라인 포커 클럽을 개설할 수 있으며, 이중 규모가 큰 포커 클럽은 세계적인 온라인 포커 사이트와도 규모를 견줄 만할 정도입니다.


딥플레이의 포커 봇은 포커 클럽에서도 활용됩니다. 새롭게 포커 클럽에 가입한 신규 회원이 언제나 참여 가능한 활성 테이블을 유지하는 데 사용되는 것입니다. 딥플레이는 포커 봇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다른 봇의 침투를 막는 봇 방지 보안 솔루션도 함께 제공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봇으로 포커 세계를 뒤흔든 이들이 봇 보안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한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딥플레이 전직 직원 중 한 명은 딥플레이의 포커 봇이 고의로 기술 수준을 낮추어 사람들이 게임 테이블에 더 오래 머무르고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도록 페이스를 조절하는 데까지 발전했다고 밝혔습니다. 온라인 포커 사이트와 포커 클럽은 딥플레이와의 연관성을 부정합니다. 내부적으로 봇을 운영하거나 딥플레이와 함께 일했다는 사실이 드러날 경우 고객들의 외면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킷 첼렐이 상위 5개의 온라인 포커 사이트에 딥플레이와의 연관성을 묻자, 공식 답변을 내놓은 곳은 한 곳도 없었습니다.


포커 봇은 이제 온라인 포커 세계에서 암약하는 것을 넘어 플레이어들의 일상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프로 포커 플레이어들은 봇을 사용하여 훈련하고 있습니다. 최초 온라인 포커 세계에서 포커 봇은 본체를 망가뜨리는 일종의 바이러스와 같은 존재였지만, 일부의 바이러스가 진화를 통해 약탈적 특성을 벗고 숙주에게 영구히 스며드는 것과 같은 모양새입니다. 이제 온라인에서 포커를 즐기는 사람들은 봇의 존재를 인정하고 공생하는 법을 익혀야 할 것입니다.


물론 2019년 모건 스탠리의 경고처럼 결국 온라인 포커 세계를 파멸에 이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딥플레이 역시 모건 스탠리와 같은 결론에 다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2018년 딥플레이를 창설한 러시아의 학생 집단은 창립 1년 후 기존의 스탠스에서 거의 정반대되는 유화적인 제스처를 선보이기로 했습니다. 아마추어 포커 플레이어의 80%가 계속 돈을 잃는 데 지쳐 1,000 핸드 이전에 게임을 중단하는 데에 착안하여, 견디지 못 하고 게임에서 이탈하는 80%의 플레이어에 초점을 맞춘 봇 모델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상대의 돈을 빼앗는 데에 최적화하여 세계를 제패한 러시아 포커 봇은, 이제 상대의 돈을 쥐어짜내기보다 비슷한 수준의 다른 플레이어들을 매칭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마치 틴더(Tinder)처럼 포커 플레이어를 연결하려 합니다.

닉네임 보바(Vova), 러시아 포커 봇 개발 집단 핵심 멤버

이들이 약탈을 일삼는 포커 봇에서 사용자 친화적인 포커 봇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생존 때문입니다.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숙주를 파괴하고 뒤에 자신도 소멸되는 것을 두려워 하여 스스로 독성을 떨어뜨리듯, 러시아 학생 집단 출신의 개발자들 역시 포커 봇의 독성을 약화시키려 합니다. 봇의 냉정한 약탈이 지속될 경우 자칫 본인들의 생존 기반인 온라인 포커 세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일까요?


실력이 지배하는 포커의 세계에서 운으로 승리하여 돈을 벌 수 있다는 환상은 온라인 포커 세계로 많은 신규 플레이어들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혹은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실력이 없는 것처럼 위장하여 심리전으로 상대를 교란할 수도 있습니다. 얼굴을 보지 못 하는 상대와 다양한 형태로 승부를 겨룰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온라인 포커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매력에 이끌려 온라인 포커의 세계로 진입하는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없다면 프로는 수익을 낼 수 없고, 사이트 운영진 또한 수수료 장사를 통해 수익을 올리지 못 합니다. 극도로 진화한 포커 봇의 미래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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